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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틀리다 하지 말고 다름을 이해하자.

꿍스뿡이 2019. 9. 18. 09:00


 꿍스뿡이의 드림빌더 

[꿍스뿡이의 생각] #02 틀리다 하지 말고 다름을 이해하자

안녕하세요. 꿍스뿡이입니다!

오늘은 다름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봅니다.

 


 


대화하기 어려운 시대

 

여러분의 어린시절은 어떠했나요?

저의 어린시절은 4층규모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빌라 아니고 아파트여요. ㅇㅅㅇ)


저의 어린시절에는 게임기가 활성화되어 있진 않았습니다. 

조금 논다 싶으면 장난감 로보트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제 또래 친구들은 모래가 잘 깔린 놀이터에서 각자 가지고 놀던 장난감 로보트를 들고 놀곤 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누구랑 놀까?' 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놀이터에 가면 항상 '누군가'가 있었고, 항상 놀던 친구들이 없으면 '다른 누군가'와 놀면 그만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누군가는 얼마지나지 않아 '친구'가 되곤 했지요.

 


저녁시간이 다가오면 4층짜리 아파트 창문에는 '누구누구야 밥먹어라' 라는 엄마들의 소리가 들려왔고, 만약 '누구누구 엄마'가 퇴근시간이 늦어지면 그 친구의 손을 잡고 같이 집에 들어와서 밥을먹곤 했습니다.

(아, 물론 너무 늦은시간까지 놀면 아파트 방송이 나오곤 했죠. '누구누구 엄마가 찾고 있으니 누구누구는 얼른 집으로 가라' ㅋㅋ)

당시를 떠올리면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불편했고, 더 가난했지만 '이웃'을 대함에 있어 관대했고 누군가를 만남에 있어서도 선입견 없이 곧잘 어울리곤 했던걸로 기억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는 발전했고 기술은 진보하며 우린 그 어떤 시대보다 빠르게 소통하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의 시대는 예전보다 더욱더 소통하기 어렵고 단절되어 감을 많이 느끼며 살아가곤 합니다. 


사람들은 더이상 윗집의 쿵쾅거리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웃집의 초인종 소리는 반가움보다는 두려움으로 받아들여집니다. 

 

 

SNS가 확대됨에 따라 온라인상의 교류는 증가했으나, 실제 만남을 가지는 횟수는 그만큼 줄어들었습니다.

회사에서는 '개인적인' 이유로 이 사람이 휴가를 왜 가는지, 병가는 왜 냈는지 직장 상사와 후배는 알 수 없습니다.

젊은남녀는 연애경험이 없어 돈을 내고 연애를 알려주는 학원에 등록하여 연애를 배우며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부끄러움과 고민을 드러내는 대신 SNS에 자신의 화려함을 무의미하게 등록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회는 유래없이 발전하고 화려해졌고, 소통하고, 투명해지고 있지만

개인은 유래없이 외로워지고, 고립되어가고, 기댈곳이 없어지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린 외유내강이라는 말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외강내유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진 않나 싶습니다.

그 어떤 시대보다 화려하고 똑똑해졌지만 그 어떤 시대보다 외로워진.

지금의 우리세대는 그렇지 않나요?

 




 

 

틀리다 말하는 사회

 

나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과 직접 마주 앉아 대화하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대화는 말과 글로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 말을 하는 당사자의 손짓, 몸짓, 어투, 표정 등을 오롯이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때야 말로 나와 이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 다름속에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생각은 어디까지인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은 어디까지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프라인 대화보단 온라인 대화가 익숙해지며 이러한 대화의 모습을 찾기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대신 사람들은 그 대화의 대상을 유튜브와 같이 온라인에서 이야기하는 소수의 사람의 발언으로 대신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사회는 점점 토론하기 보단 소수집단의 이야기를 수용하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무조건적인 수용적 자세가 지속되면 될수록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게

점점 힘들어지는건 어찌보면 당연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요즘의 사회분위기를 보면 이런 '틀림에 대한 지적'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사람들은 더이상 A라는 이야기가 있으면 A라는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보단 A라는 이야기속에서 잘못된 점만 찾아서 반박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남자와 여자, 진보와 보수,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부자와 가난한자, 종교와 비종교인 등

우리가 한쪽 진영에 서서 다른쪽 진영을 향해 '틀리다'고 말할 수 있는 주제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주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각자의 위치에서 행동하는것은 기본적으로 그 행동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반박하고, 그 사람이 아무말도 못한다면

'내 말이 옳고, 당신 말을 틀리다.'며 기쁠 순 있겠지만

그 대화속에서 '나'는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과 대화하고 많은 생각을 받아들이자

 

대화의 사전적인 의미는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또는 그 이야기. 라고 되어있습니다. 


대화는 기본적으로 '주고 받아'야 합니다.

어느 누군가가 일반적인 주장만을 내세운다면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는 기본적으로 그러지 못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행해지는 여러 모습들을 보면 우린 상대방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나의 입장만을 생각하며 살곤 합니다. 그렇기에 대화는 점점 내 행동에 대한 타당성을 입증하는 위주로 하게되고,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삶은 선택의 연속이니 그런 삶을 산다고 그 삶을 잘못되고 부도덕한 삶이라 단정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모습으로만 일평생을 살게되면 보고 배운것도 딱 거기까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만 생각하는 삶은 '내가 잘살아야 하고, 내가 잘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삶까지 고려할 순 없다.' 뿐이지 않을까요?

 

 

반면 다른사람들에게 대가없는 호의를 배풀고,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여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고쳐나가며 살고 있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나의 생각과 판단에 있어 확신을 가지는것에 있어 경계하고 다른 의견을 적극적으로 들으며 삶을 선택해 나갑니다. 나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삶은 끊임없이 배우고, 끊임없이 나누고, 그런 삶은 결국 내 자신을 더욱더 풍요롭게 해준다.'로 생각하며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요?

 



마무리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역시 고쳐지지 않는 고집들과 잘못된 생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뿐이죠.


특히, 사람과 사람간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 하는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요즘시대에 가장 걱정되는것은

"나의 생각이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진 않았는가?"에 대한 걱정입니다. 


그저 이 글을 쓰며 든 생각은

(저를 포함한) 각자의 생각들이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는것에 주저함이 없기를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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